웹사이트 소개
Introduction of the website
fluorF 소개
Introduction of fluorF
새로운 소식
News
하루 이야기
Daily essay
글
Articles
사진첩
Album
방명록
Guestbook
글
Articles
미술 5
Fine Art 5
유화와 화학
파란색의 발견
Discovery of Blue Color
이번 장부터 논의는 유화의 전색제(展色劑)로 쓰인 기름에서 현색제(顯色劑)인 안료(顔料, pigment)로 넘어간다. 특히 안료 중에서도 파란색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룰텐데, 다양한 색 중에서 굳이 파란색만 다루는 이유는 따로 있다 ― 바로, 파란색 안료가 다른 색 안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귀했기 때문에 할 이야기가 많기 떄문이다. 1장에서 언급한 바대로 안료가 돌가루였음을 상기해 본다면, 파란색 안료를 얻기 위해서는 원료로서 파란색 돌이 필요할텐데 과연 이 세상에 파란색 돌이 있기는 한 걸까? 불그스름한 돌, 흰 돌, 검은 돌은 금방 생각나지만, 새파란 돌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파란색 돌, 정확히는 파란색 광물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파란색 안료는 파란색 광물을 얻을 수 있는 특정 지역에서만 활용할 수 있는 귀한 재료였는데, 파란색 광물을 포함한 암석으로서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류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이 바로 청금석(靑金石, lapis lazuli)이다.
청금석은 금색 장식이 박혀 있는 아주 고급진 진한 감청색(紺靑色)을 띠고 있는데, 그 색이 독특하고도 화려하고 선명해서 그 옛날 고대 이집트에서도 각광받았던 귀한 광물이었다. 청금석에 대한 사람들의 숭앙은 고대에나 중세에나 지금에나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이탈리아의 화가 첸니노 첸니니(Cennino Cennini, 1360-1427?)는 아래와 같이 울트라마린의 파란색을 찬미하는 글을 남긴 바 있었다:
울트라마린은 그 어떤 색깔보다 독보적이면서 아름답고 가장 완벽한 색깔이다... 황금과 결합한 채로 우리의 모든 작품을 장식하고 있는 이 색깔이 벽에서든지 패널에서든지 그 모든 사물로부터 빛날지어니...
사실 이 청금석은 굉장히 다양한 광물들의 혼합물인데 주요 구성 요소는 아래와 같다:
여러 광물의 집합체인 청금석이 산출되는 지역으로는 칠레, 시베리아, 미국, 미얀마가 있으나,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최상의 청금석이 나오는 곳으로 치는 유서 깊은 청금석 산지는 바로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이다. 지금은 타지키스탄 및 중국 영토와 공유되는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의 바다크샨(بدخشان) 주에서 채굴된 청금석은 분쇄 및 정제를 거쳐 최고급의 파란 안료로 탄생할 수 있었고, 이렇게 제조된 파란 안료는 당시 파란색을 갈망하던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지역, 그리고 고대 이후 유럽 세계에까지 전해지며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이렇게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우여곡절 끝에 도작한 청금색 안료는 아랍어로 صبغة اللازورد라고 하는데, 바다크샨 내에 있는 청금석 산출지인 러즈바르드(لاجورد)의 안료라는 뜻이다.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아랍세계에서는 저기 옆동네에서 만든 안료라는 식으로 이름을 붙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안료가 중동 지역으로부터 유럽 사람들에게 전달되려면 어떤 경로로든 무조건 바다를 건너와야만 했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이 귀한 안료가 바다(=mare) 너머(=ultra-)에서 왔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붙였으니 아래와 같다:
산출되는 지역이 한정적인데, 바다 건너 먼 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유럽으로 전달되어야 했던 울트라마린이었다. 게다가 유럽에서는 파란색 안료 수요가 매우 높은 편이었으니 울트라마린 가격이 폭등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기록에 따르면 같은 질량의 금박보다 울트라마린이 더 비쌌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울트라마린은 아무 상황에나 쓸 수 있는 안료가 아니었다.
역사를 살펴보면, 색깔을 내기 위한 재료의 가격이 치솟을수록 이 재료로부터 얻은 색깔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의 귀족 혹은 왕으로 한정되곤 했는데, 가장 유명한 예로 구하기 너무 고되었던 자주색 염료의 색이 오직 동로마 제국의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색깔로 결정된 것을 들 수 있겠다.2 마찬가지의 이유로 인해 자연히 회화 작품에서 울트라마린은 매우 고귀하신 분에게만 사용이 한정되곤 하였다.
그런데 서양화가 그려온 대상 중 가장 고귀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르네상스 시기까지만 해도 유럽 세계는 기독교의 강력한 영향 하에 있었으며, 따라서 이 시기 화가들이 벽이나 캔버스에 그릴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사람은 단 둘이었다 ㅡ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 특히 여성이라는 특성상 채색된 옷을 입은 모습이 자주 그려져야 했던 성모 마리아의 경우, 화가들은 그녀를 공경하는 마음을 담아 이 값비싼 파란색 안료를 주저하지 않고 사용했다. (거꾸로 말하자면 종교적 색채를 띤 서양 회화 작품에서 울트라마린으로 칠해진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이 보인다면 그녀가 성모 마리아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 아래에 그려진 마리아의 옷은 모두 울트라마린으로 채색되었다.
다음 섹션에서도 소개하겠지만, 당시 울트라마린만이 유일한 파란색 안료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화가들은 오직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분을 묘사할 때에만 값비싼 울트라마린을 사용하고 나머지 다른 파란색은 보다 값이 싼 파란 안료를 활용하곤 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 네리 디 비치(Neri di Bicci, 1419-1491)는 그림 「아이를 안은 성모와 네 성인들」이라는 작품에는 성모의 옷이라든지 성인이 든 책이라든지 여러 파란 채색이 보이지만, 성모 마리아의 옷만 울트라마린으로 칠하고 다른 파란색은 다른 안료를 활용했다고 전한다.
울트라마린의 아름다운 파란색은 다양한 파란색 안료가 개발된 르네상스 이후에도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수준의 색깔이었다. 그래서 가격이 여전히 비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화가들이 꾸준히 울트라마린을 탐닉했는데,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이 울트라마린의 파란색에 환장했던 화가가 있으니 바로 바로크 시대 네덜란드 출신 화가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이다. 그는 울트라마린 색깔을 너무 좋아해서 그의 대표작인 「Het Meisje met de Parel(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등에서도 울트라마린 물감을 아낌없이 사용했으며, 이로 인해 큰 빚을 져 경제적으로 고난을 겪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울트라마린 외에도 파란색을 표현할 수 있는 안료는 여럿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에서 사용한 파란색 안료, 즉 이집션 블루(Egyptian blue)인데, 특이하게 이것은 파란색 광물을 채굴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구리를 포함하고 있는 광물에 모래를 한데 넣고 가열해서 얻었다고 한다. 즉, 이집트 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안료를 합성해서 썼던 것이다!
이렇게 합성된 이집션 블루는 CaCuSi4O10, 즉 산화 칼슘과 산화 구리, 그리고 이산화규소가 한데 어우러진 형태인데, 당시 이집트 사람들이 근대 화학의 개념을 가지고 안료를 합성한 게 아니었던만큼, 사용했던 모래와 각종 첨가물 (혹은 불순물)의 상태 및 양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범위의 파란색을 가진 이집션 블루가 합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이 안료를 "인공적인 청금석"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이를 통해 울트라마린을 대체할 수 있는 파란색 안료로서 이집션 블루를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료의 비율이 조금만 달라져도 원하는 파란색이 나오지 않았을 합성 특성상, 이집션 블루 합성 기술은 고대 이집트 장인들의 구전을 통해 소수의 후임 기술자들에게만 알음알음 전달되었을 터. 안타깝게도 이집션 블루를 합성하는 방식이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의 왕조가 붕괴된 이후, 이집션 블루 합성법은 완전히 잊혀졌다고 전한다.
이집션 블루를 더 이상 합성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럽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산출되는 자연 광물로부터 파란색 안료를 얻어야만 했다. 다행히도(?) 유럽에는 남동석(藍銅石, azurite)이 있었고, 사람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파란색 안료를 만들었다. 남동석의 화학식은 Cu3(CO3)2(OH)2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ㅡ 군청색(群靑色)을 의미하는 남(藍)과 구리를 의미하는 동(銅)이 조합된 이름 ㅡ 짙은 파란색을 띠는 구리 화합물이다.
그런데 중세~르네상스 시기에 남동석으로부터 얻은 파란색 안료로 그린 그림을 보면 울트라마린처럼 파랗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도 보이지만, 등장인물이 입고 있는 파란색 옷은 어딘가 선명하지 않으며, 초록색이 약간 섞인 것 같지 않은가?
사실 이것이 남동석으로부터 만든 파란색 안료의 치명적인 문제점이었다. 남동석을 구성하는 구리 화합물은 공기 중에서 산소와 결합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녹색을 띠는 공작석(孔雀石, malachite)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흐르게 되면 아예 검은색을 띠는 산화 구리(CuO)가 되어 버린다. 이런 이유로 오래 전에 칠해진 남동석 안료는 바랜 녹색이었다가 점차 검은 빛을 띠며 어두워지는 것이다. 이런 색변화는 파란색을 표현하려는 예술가들이 결코 원치 않는 것이었으며, 여전히 유럽 사람들이 울트라마린을 찾는 이유였다.
한편, 아시아에서는 파란색을 표현하는 노력이 도자기 표면에서 꽃피우고 있었으니, 가마에서 굽기 전에 흙으로 만든 도자기 겉에 바르는 유리질의 분말인 유약(釉藥, glaze)이 그것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유약을 바른 뒤 구우면 매끄러우면서 투명한 무기화합물 층이 표면이 만들어지면서 광택이 난다 ㅡ 이는 4편의 니스칠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그런데 유약 자체에 포함되어 있는 금속 성분이 가마에서 구워지면서 산소와 화합하게 되면 굽는 조건에 따라 다양한 구조의 금속 배위 화합물(coordination complex)이 형성되며 이로 인해 도자기가 색깔을 띠게 된다. (이 내용은 6장에서 굉장히 심오하게 다룰 예정이다.)
그런데 어느날 도자기 업자들이 가마에서 쿠우면 어떤 유약으로부터 강렬한 파란색을 내는 물질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유약에는 코발트(Co)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산화 과정에서 유리 내에 파란색을 띠는 코발트 화합물이 형성되는 것이었다 ― 물론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코발트가 무엇인지 알 리 만무했지만 말이다. 주로 아랍 세계에서 제조되어 동아시아로 수입된 코발트 유약은 중국와 한반도 내에서의 청화백자(靑華白磁) 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이는 중국 명, 청 시기에 세계적인 특산품이 되어 전지구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 때 중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한 코발트 유약을 원나라 시기에는 소마리청(蘇麻離靑) 혹은 소격니청(蘇激泥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원나라는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이었으니, 아랍 세계에서 만들어진 코발트 유약을 중국으로 들여오는 데 과거 왕조보다도 덜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또한 해외 진출을 활발히 했던 명나라 초기 영락제(永樂帝) 시기까지만 해도 해외로부터 이 코발트 유약을 수입해오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가정제(嘉靖帝) 시기에 이르러 회청(回靑)3이라는 것이 대신 쓰이기 시작했는데, 애석하게도 명나라의 회청 수입은 과거 해상을 통한 소마리청 수입보다 효과적이지 못했고 재정부담도 컸다. 이에 명나라와 조선에서는 자체적으로 청색 유약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생산된 토청(土靑)의 청색 품질이 좋지 못해서 동아시아의 청화백자는 예전만한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4
반면 서양에서는 코발트 안료의 개발과 도입이 굉장히 활발해지고 있었다. 코발트 성분이 들어간 유리의 생산 공정이 개발되었고, 네덜란드의 델프트(Delft)같은 곳에서 중국 혹은 일본풍의 청화백자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조품 수준의 조악한 품질이었으나, 체계적인 제작관리와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유럽의 산업 구조 하에서 서양의 청화백자 품질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바로 이 코발트 유약으로부터 만든 고체를 잘게 부수어 현색제로 활용한 것이 화감청(花紺靑), 영어로는 스몰트(smalt)라고 한다. 아래 그림의 바다를 표현하는 데 스몰트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화감청 안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리를 만들어야 했고, 그 유리를 다시 부수어 안료로 제작해야 했는데, 유리라는 재료가 산업화가 이루어진 오늘날과 같이 흔해 빠진 재료인 것도 아니었고, 복잡 다단한 열처리 및 배합 조건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화감청의 파란색깔이 일정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파란색 안료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던 그 때, 파란 구세주가 독일에 강림하였다 ― 바로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였다.
프러시안 블루를 최초로 합성한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하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바로 요한 디스바흐(Johann Diesbach)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 사람은 베를린(Berlin)에서 염료와 안료를 다루던 사람이었는데, 당시 그가 만들던 염료는 코치닐(cochineal)이라고 불리는 빨간 염료였다. 이 염료를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지벌레를 잡아야 했는데,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코치닐 분말염료 1kg를 얻기 위해서는 연지벌레 벌레 약 15만5,000마리가 필요하다고 한다.5
디스바흐가 당시 쓰던 방식은 쌓여있는 연지벌레 시체를 잘 말린 뒤 명반(明礬)과 황산 철(FeSO4), 그리고 포타시(potash)라고 불리는 탄산 포타슘(K2CO3) 화합물을 섞고 빨간 염료를 추출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디스바흐가 사용하던 포타시가 마침 다 떨어졌고, 그는 동료였던 요한 디펠(Johann Dippel)에게 포타시를 좀 빌려 염료 공정을 계속 진행할 수 있었다. 문제는 디펠에게서 빌린 포타시를 넣고 추출을 하자 원래 통상적으로 얻을 수 있는 '빨간색'이 아닌 '파란색'이 섞인 것같은 의뭉스러운 색깔이 얻어졌다는 것이다.
이상한 느낌을 감지한 디스바흐는 이 파란색이 연지벌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농도를 바꿔가면서 공정을 진행해 봤는데, 완연하고도 진한 파란색 가루가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알고보니 디펠이 빌려준 포타시는 동물 기름을 생산할 때 사용하던 포타시였는데, 여기에는 불순물이 섞여 있었고 이 불순물이 황산 철과 반응하면서 진한 파란색 침전이 형성되는 것이었다.6 곧 디스바흐가 이 파란색 안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가 발견한 안료에는 당시 베를린을 지배하고 있던 프로이센 왕국(Königreich Preußen)의 이름을 따서 프로이센의 파란색(Preußisch Blau)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것이 지금의 영문 명칭인 프러시안 블루의 어원이 되었다.7
프러시안 블루의 인기가 어마어마했음은 굳이 상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전 유럽에서 이 진귀한 파란 안료를 울트라마린보다 훨씬 값싸게 구하려고 혈안이 되었고, 자연히 디스바흐를 비롯한 프러시안 블루 생산업자들은 이 안료의 생산기술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하도 인기가 많았던지 쪽으로부터 얻은 인디고(indigo) 염료를 프러시안 블루로 둔갑시켜 사기를 치는 사람이 생겨났을 정도였고, 울트라마린을 제조하던 파리의 안료 공장은 프러시안 블루의 인기로 인해 결국 문을 닫아야 했을 정도라고 하니 가히 그 인기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제조된 프러시안 블루는 1차적으로는 물감 안료로 사용되었고, 이후에는 직물 염색에도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비밀에 감춰진 프러시안 블루의 합성법은 1724년 영국의 화학자 존 우드워드(John Woodward)가 『영국왕립학회 철학회보(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in London)』 에 공개한 편지를 통해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8 독일로부터 제법을 편지로 전달받은 우드워드는 동료 회원이었던 존 브라운(John Brown)에게 이 편짓글대로 실험을 진행해서 프러시안 블루가 만들어지는 지 확인해보자고 제안했고, 브라운은 실험결과 진한 파란 안료가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했다.9 존 브라운은 철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해한 듯 했으나 도대체 어떠한 이유로 금속인 철로부터 이런 멋진 파란색이 나오는지, 혹시 피에 포함된 가성 소다 때문인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논조로 글을 마쳤다.
프러시안 블루가 철의 사이안화물이라는 사실은 100여년이 지난 1811년 프랑스의 화학자 조제프 게이뤼삭(Joseph Gay-Lussac)이 프러시안 블루를 가열함으로써 얻은 사이안화수소(HCN)를 분석한 논문을 통해 확인되었다.10 하지만, 프러시안 블루가 정확히 어떤 구조로 철의 사이안화물을 구성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100여년의 세월을 필요료 했다. 정확히는 무기화합물의 결합 방식의 이해에 더해 X선을 이용한 회절(diffraction)분석법이 요구되었는데, 1936년에 최초로 이를 통한 분석이 시도된 이후,11 최종적으로 프러시안 블루의 구조가 확정된 것은 최초로 합성된지 무려 270여년이 지난 1977년에야 가능하게 되었다.12 확인된 바에 따르면 프러시안 블루의 화학식은 Fe4[Fe(CN)6]3·xH2O으로 표현 가능하며, 사이아노(-C≡N:) 리간드가 철 원자 사이를 다리 놓듯 배위결합하고 있는 것을 기본으로 한 구조이다.
프러시안 블루는 남동석 안료와는 달리 시간이 지나도 변색되지 않았다. 따라서 프러시안 블루는 값비싼 울트라마린의 훌륭한 대체재였고, 고가에 거래되던 파란색 안료의 가격을 상당히 낮춤으로써 파란색을 그림에 널리 사용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18세기 이후 프러시안 블루가 그림에 사용된 예는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아래의 두 예가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유명하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은 독자 중에 화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파란색을 내는 안료의 화합물에서 뭔가 특징적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집션 블루와 남동석은 구리(Cu) 화합물이었다. 화감청은 코발트(Co) 화합물이었다. 그리고 프러시안 블루는 철(Fe) 화합물이었다. 구리와 코발트, 철은 모두 원소주기율표상 전이 금속(transition metal)에 속하는 원소이다. 도대체 파란 색깔을 내는 화합물이 금속 원소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모든 안료마다 전이 금속이 포함되어 있었을까? 그 색깔에 숨겨진 전이금속화학의 비밀을 다음 장에서 다루고자 한다.
▼[이전글] 4. 유화 기법의 특성 (Oil Painting Techniques)
▼[다음글] 6. 전이금속과 물감 (Transition metals and paints)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